20대 여성 8%, 남성 1% — 하지정맥류가 유독 여자를 노리는 이유

얼마전 어머니가 하지정맥류로 힘들어 하셔서 결국 수술을 단행했다. 헌데 주위를 둘러보면 여자만 하지정맥관련 질환이 유독 많다. 왜 그런걸까
서울아산병원이 정리한 유병률 자료를 보면 숫자가 꽤 노골적이다.
20대 여성의 8%가 하지정맥류를 갖고 있는 반면 같은 나이대 남성은 1%에 그친다.
50대로 가면 여성 41%, 남성 24%. 70대에는 여성 72%, 남성 43%. 나이가 들수록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두 집단 모두 늘어나면서 격차의 절대량은 오히려 커진다.
국내 하지정맥류 환자의 약 68%가 여성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패턴이 너무 뚜렷하다. 원인은 결국 한 단어로 좁혀진다 — 호르몬이다.
하지정맥류란 무엇인가
다리 정맥에는 혈액이 중력을 거슬러 심장 쪽으로만 흐르도록 막아주는 판막이 일정 간격으로 붙어 있다.
이 판막이 늘어나거나 망가지면 혈액이 역류해서 정맥 안에 고이고, 그 압력을 못 이긴 혈관 벽이 부풀어 올라 피부 밑으로 구불구불하게 도드라진다.
이게 하지정맥류다. 국내 성인의 30~60%가 어떤 형태로든 이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사실 흔한 병에 가깝다. 문제는 초기엔 그냥 미용상 문제로 넘기기 쉽지만, 방치하면 판막 손상이 누적되면서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왜 유독 여자가 잘 걸릴까 — 호르몬이라는 결정적 변수
정맥벽은 콜라겐과 탄력섬유로 짜여 있는 결합조직인데, 에스트로겐은 이 조직을 이완시켜 더 잘 늘어나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임신·출산이라는 원래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기능이지만, 다리 정맥 입장에서는 혈압을 버티는 힘이 약해지는 셈이다. 프로게스테론은 여기에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까지 더한다.
두 호르몬이 함께 작용하면 정맥은 더 잘 늘어나고, 그 안에 혈액은 더 쉽게 고인다. 남성에게는 이런 변수 자체가 없거나 훨씬 약하게 작용한다.
이 변수가 가장 극적으로 몰아치는 시기가 임신이다. 자궁이 커지면서 골반 정맥을 물리적으로 눌러 다리 쪽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여기에 순환 혈액량 증가와 프로게스테론 급상승이 겹친다.
서울아산병원 자료에서도 “임신 3개월째에 하지정맥류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호르몬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짚는다. 출산 경험이 많을수록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리 전 며칠, 경구 피임약 복용 중, 폐경기 호르몬 대체요법(HRT) 중에도 같은 메커니즘이 일시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흥미로운 건 폐경 이후다.
에스트로겐이 오히려 줄어드는 시기인데도 하지정맥류 발생률은 계속 올라간다.
그동안 에스트로겐이 어느 정도 유지해주던 정맥벽의 탄력이 사라지면서,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화와 겹쳐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으로 설명된다. 즉 호르몬이 “많아도” “적어도” 다리 정맥 입장에서는 둘 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유전은 별개로 가장 강력한 단일 요인이다. 환자의 약 80%가 가족력을 갖고 있다.
다만 같은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어도, 위에서 설명한 호르몬 변수를 평생 몇 차례씩 통과하는 쪽은 여성이라서 실제 발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지는 생활 습관 변수
호르몬이 기본값을 불리하게 세팅해놓았다면, 생활 습관은 거기에 가속도를 붙인다.
다리 혈액순환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하이힐, 스키니진이나 레깅스처럼 종아리를 조이는 옷,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 판매·서비스직처럼 오래 서 있어야 하는 근무 환경 모두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더 흔하게 결합되는 조건들이다.
20대 여성 환자가 늘고 있는 이유로 이런 패션·생활 습관 요인이 자주 지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르몬은 손댈 수 없는 변수지만, 이쪽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바꿀 수 있는 변수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
초기 증상은 특이할 게 없어서 오히려 놓치기 쉽다. 오래 서 있거나 날이 더울 때 다리가 유난히 무겁고 피곤하다,
저녁이 되면 발목이나 종아리가 붓는다, 밤에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자주 난다, 다리가 저리거나 화끈거린다,
별다른 이유 없이 가렵다 — 이 정도가 전부다. 혈관이 피부 밖으로 뱀처럼 튀어나오는 건 오히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의 이야기다.
방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부색이 갈색이나 검붉은색으로 변하는 색소침착, 피부가 딱딱하게 굳는 경화, 낫지 않는 궤양, 혈전성 정맥염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심부정맥혈전증이다.
다리 정맥에 생긴 혈전이 떨어져 나가 폐로 이동하면 폐색전증이 되는데, 이건 응급 상황이다. 갑자기 한쪽 다리만 심하게 붓고 아프다면 미루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한다.
자가진단은 참고용일 뿐 진단을 대체하지 못하지만, 다음 중 서너 개 이상 해당하면 한 번쯤 혈관외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 서 있을 때 종아리나 허벅지에 구불구불한 혈관이 비친다.
저녁만 되면 다리가 붓고 양말 자국이 유난히 깊게 남는다. 오래 서 있고 난 뒤 다리가 뻐근하고 무겁다. 밤에 종아리 쥐가 반복된다. 다리 피부가 가렵거나 색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진단은 어떻게 하나
서 있는 자세에서 육안으로 혈관의 모양과 분포를 확인하는 게 첫 단계다. 이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판단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어느 판막에서 역류가 일어나고 있는지, 얼마나 심한지는 도플러 초음파 검사로 확인한다.
통증 없이 짧은 시간에 끝나는 검사이고, 이후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핵심 근거가 된다.

대처 방법 — 증상 완화부터 근본 치료까지
경증이라면 굳이 시술까지 갈 필요는 없다. 압박스타킹(보통 20~30mmHg 압력 제품)을 아침에 다리가 붓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신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부은 다음에 신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잘 때는 다리를 심장보다 10~15cm 정도 높게 두고, 오래 앉거나 서 있는 자세를 피하며 중간중간 걷거나 종아리를 움직여주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눈에 띄게 편해진다. 정맥 순환을 돕는 약물을 보조적으로 쓰기도 한다.
증상이 뚜렷하거나 미용적으로도 신경 쓰인다면 적극적 치료를 고려하게 되는데, 방식은 네 가지로 나뉜다. 주사 경화요법은 문제가 되는 정맥에 경화제를 주입해 막아버리는 방식으로, 마취나 입원 없이 외래에서 짧게 끝나지만 재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시술 후 2~3주간 압박스타킹을 꾸준히 착용해야 한다.
고주파 정맥내 폐쇄술과 레이저 정맥내 폐쇄술은 가는 관을 정맥에 넣어 열로 혈관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피부 절개가 최소화돼 흉터가 거의 안 남고 회복도 빠르지만 수술보다는 재발률이 조금 더 높다고 보고된다.
마지막으로 정맥 발거술(스트리핑)은 문제 혈관을 아예 제거하는 전통적 수술로, 재발률은 가장 낮지만 척추마취와 1박 2일 입원, 피부 절개흔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맥의 굵기와 위치, 증상의 정도, 환자의 나이와 직업, 미용적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지므로 혈관외과 전문의와 초음파 소견을 놓고 상담해서 정하는 게 맞다.
예방을 위해 오늘부터 할 수 있는 것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어도 발병 시기를 늦추고 진행 속도를 늦추는 건 가능하다.
같은 자세로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지 않기, 다리를 꼬지 않기, 틈틈이 걷거나 종아리를 움직여 근육 펌프 작용을 살려주기, 조이는 옷과 굽 높은 신발을 매일 신지는 않기, 체중을 관리하기, 잘 때 다리를 살짝 높게 두기 정도면 충분하다.
오래 서 있는 직업이라면 예방 차원에서 압박스타킹을 미리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임신 계획이 있거나 이미 임신 중이라면 산부인과와 상담해서 압박스타킹 착용 시기를 정해두는 걸 권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하지정맥류는 왜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이 걸리나요?
에스트로겐이 정맥벽 결합조직을 이완시켜 잘 늘어나게 만들고, 프로게스테론은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두 호르몬을 여성은 생리 주기, 임신, 폐경 등 평생 여러 차례 겪기 때문에 같은 유전적 소인을 가진 남성보다 실제 발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서울아산병원 통계에서도 전 연령대에서 여성 유병률이 남성의 2~8배 수준으로 나타난다.
임신하면 무조건 하지정맥류가 생기나요?
무조건은 아니지만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건 맞다. 자궁이 커지며 골반 정맥을 압박하고, 프로게스테론이 급상승하며 순환 혈액량도 늘어나는 세 가지가 동시에 겹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신 3개월째부터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된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경우 위험이 더 커지므로, 임신 중 압박스타킹 착용을 미리 산부인과와 상의하는 걸 권한다.
압박스타킹은 하루 종일 신고 있어야 하나요?
기상 직후, 다리가 붓기 전에 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부은 다음에 착용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이후 취침 전까지 착용을 유지하고, 자는 동안에는 벗어도 된다. 압력 강도(mmHg)는 증상 정도에 따라 다르므로 처음에는 의료진과 상의해서 고르는 게 좋다.
하지정맥류를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초기에는 다리가 무겁고 붓는 정도지만, 방치가 길어지면 피부 색소침착, 피부 경화, 낫지 않는 궤양, 혈전성 정맥염으로 진행할 수 있다.
드물게는 혈전이 폐로 이동하는 폐색전증까지 이어질 수 있어, 한쪽 다리가 갑자기 심하게 붓고 아프다면 응급 상황으로 보고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
레이저·고주파 시술과 수술 중 뭐가 더 나은가요?
절대적으로 우월한 방법은 없다. 정맥 발거술(수술)은 재발률이 가장 낮지만 입원과 흉터를 감수해야 하고, 레이저·고주파는 흉터가 거의 없고 회복이 빠른 대신 재발률이 수술보다 조금 더 높다고 보고된다.
정맥의 굵기·위치, 증상 정도, 환자의 생활 여건에 따라 적합한 방법이 달라지므로 초음파 검사 결과를 놓고 혈관외과 전문의와 상담해서 정하는 게 맞다.
하지정맥류는 완치가 가능한가요, 재발하나요?
치료한 혈관 자체는 막히거나 제거되지만, 정맥류를 만드는 근본 체질(유전, 호르몬)이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부위에 새로운 정맥류가 생길 가능성은 남는다. 그래서 치료 후에도 압박스타킹 착용이나 생활 습관 관리 같은 예방 조치를 계속 이어가는 게 재발을 늦추는 데 중요하다.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개인의 증상이나 치료 방향에 대한 진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은 혈관외과 전문의와 직접 상담해서 정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