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는 늙은 게 아니라, 자신을 잃은 것이었다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보다

2003년,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스카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게 됐는데도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해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고, 그는 “그 나라를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그가 만들고 있던 영화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이 배경을 알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예쁜 동화 안에 왜 그렇게 뜬금없이 폭격기가 마을을 불태우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건 원작에 없던, 감독이 억지로 밀어넣은 진심이다.

아흔 살이 된 열여덟 살 — 저주의 진짜 정체
모자 가게에서 일하던 열여덟 살 소피는 황야의 마녀에게 저주를 받아 하루아침에 아흔 살 노파가 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동화 설정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영리한 지점은, 소피의 겉모습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허리가 더 굽고 주름이 늘어나고, 반대로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확신을 가질 땐 순간적으로 얼굴이 젊어진다. 즉 이 저주는 나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믿는지를 시각화한 장치다.
소피가 마지막에 저주에서 완전히 풀려나는 순간도 마법의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하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외모가 아니라 태도가 바뀌자 몸이 따라 바뀐다 — 이 순서를 뒤집은 것이 이 영화가 90년대 동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작과 영화는 온도가 다른 이야기다
이 영화는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가 1986년에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그런데 원작을 읽어보면 톤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 속 하울은 허영심 많고 겁도 많고 은근히 찌질한, 그래서 놀려먹기 좋은 캐릭터에 가깝다. 반면 영화의 하울은 시종일관 우수에 찬 표정으로 창공을 나는 진지한 미남 마법사다.
국내 평론가 듀나는 이 변화를 두고 미야자키가 “장르 풍자에 가까운 원작을 스팀펑크 SF 진지극으로 바꿔놓았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나도 이 지적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원작의 유쾌한 냉소가 사라진 자리를 미야자키 특유의 비장함이 채운 셈이다.
다만 흥미로운 건 정작 원작자 다이애나 윈 존스의 반응이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성에 다리가 달려 있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했을 뿐, 영화 자체에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자기 집에 영화판 캐슬 모형을 여러 개 놓아둘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고 하니, 각색의 방향이 원작자 본인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다른 매체, 다른 관객을 향한 재해석으로 받아들이면 이 온도차는 흠이라기보다 두 창작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완성한 결과에 가깝다.

호소다 마모루가 포기한 자리에서 시작된 영화
이 작품이 원래 미야자키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2000년, 지브리는 이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호소다 마모루(훗날 《썸머 워즈》, 《늑대아이》를 만드는 그 감독)를 내정했다.
하지만 그는 2년 가까이 원작을 어떻게 영상화할지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했고, 당시 지브리의 역량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집중되면서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결국 2002년 4월, 그는 “더 이상 무리겠다”는 통보와 함께 감독직에서 내려왔다. 스스로 “이제 이 업계에서 일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할 만큼 큰 좌절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를 미야자키가 직접 넘겨받으면서 지금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제작 경위를 알고 나면 영화 후반부의 다소 헐거운 전개도 조금은 납득이 간다.
오랜 표류 끝에 다급하게 완성된 시나리오, 그 위에 감독의 반전 메시지까지 얹혔으니 이야기가 매끄럽게 정돈되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반전(反戰) 영화, 그러나 적이 없는 전쟁
영화 중반부터 두 왕국 사이의 전쟁이 이야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이름이 없다. 어느 나라가 침략자이고 어느 나라가 피해자인지, 전쟁의 명분이 무엇인지 영화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폭격기는 그냥 마을을 불태우고, 하울은 그냥 괴물이 되어 하늘에서 싸운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미야자키는 “어느 쪽도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혀왔고, 이 영화는 그 신념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결과물이다.
나는 이 방식에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있다고 본다.
장점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전쟁 자체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구체적인 정치적 좌표가 사라지면서 메시지가 다소 뭉툭해진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구체적 분노에서 출발한 영화가, 스크린 위에서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반전 정서로 흐려진다.
그럼에도 감독이 실제로 오스카 시상식마저 거부하면서 지켰던 신념이라는 걸 알고 보면, 이 흐릿함은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신중함으로 읽힌다.

완벽하지 않은 후반부, 음악이 다했다
솔직히 말하면 후반 30분은 이야기가 헐겁다.
소피가 갑자기 과거로 넘어가는 대목, 순무 허수아비의 정체가 밝혀지는 타이밍, 전쟁이 끝나는 방식 모두 인과관계보다는 감정의 흐름으로 밀어붙인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구멍이 여럿 보인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끝까지 용서가 되는 이유는, 그 헐거움을 메우는 것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특히 3박자 왈츠로 흐르는 ‘인생의 회전목마’는 이야기의 빈틈을 정서로 채우는 힘이 있다. 서사가 설명하지 못하는 걸 음악과 그림이 대신 설득한다 — 이건 미야자키 영화 전반에서 반복되는 특기이기도 하다.

흥행과 상, 그리고 기무라 타쿠야라는 변수
결과만 보면 이 영화는 확실히 성공했다.
2004년 일본 박스오피스 1위, 전 세계 누적 수익 2억 3천만 달러 이상, 국내에서도 301만 관객을 동원했다.
상복도 나쁘지 않았다 — 베니스영화제에서 스튜디오 지브리가 기술공헌상(황금 오셀라상)을 받았고,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비롯해 크고 작은 상을 19개 받았다.
다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그해 수상은 《월레스와 그로밋》에게 돌아갔다.
흥미로운 변수 하나는 하울의 목소리를 맡은 기무라 타쿠야다.
당대 최고의 아이돌 겸 배우를 캐스팅한 건 흥행에는 분명 도움이 됐겠지만, 성우 연기로서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지금도 평가가 갈린다. 일본 매체에서 그를 “지브리 더빙을 망친 스타” 순위에 올릴 정도로 혹평도 있는가 하면, 하울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 톤이 캐릭터와 잘 맞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는 후자 쪽에 가깝다. 완벽한 성우 발성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미묘하게 어색한 나른함이 오히려 하울이라는 반쯤 무너진 인물과 묘하게 어울렸다고 본다.

총평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이야기는 헐겁고 메시지는 다소 뭉툭하지만, 그 빈틈을 그림과 음악과 감독의 진심이 채운 영화. 서사의 정교함을 기준으로 보면 미야자키의 다른 대표작들에 못 미친다.
하지만 ‘나이 든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라는 통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하다. 평점을 매긴다면 4/5.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인간적인 영화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작 소설과 많이 다른가요?
꽤 다르다. 다이애나 윈 존스의 1986년 원작은 장르 클리셰를 유쾌하게 비트는 코미디에 가깝고 하울도 허당끼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미야자키는 이를 진지한 스팀펑크 드라마로 재해석하면서 톤을 완전히 바꿨다. 다만 원작자 본인은 영화판에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전쟁은 실제 어떤 전쟁을 모델로 한 건가요?
특정 국가나 사건을 직접 모델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영화가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제작됐고, 미야자키 감독이 이 전쟁에 강하게 반발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속 전쟁에 침략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 것도 ‘어느 쪽도 옳지 않다’는 감독의 반전 신념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이라크 전쟁 때 오스카 시상식에 가지 않았나요?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을 때, 미야자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던 시기였고, 그는 그런 나라를 방문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이 신념은 같은 시기에 제작 중이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반전 메시지로도 이어졌다.

소피가 늙었다 젊어졌다 하는 이유는 뭔가요?
황야의 마녀의 저주 때문이지만, 영화 안에서 소피의 겉모습은 고정돼 있지 않다. 자신감을 잃거나 위축될 때는 더 늙어 보이고, 확신을 갖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는 순간적으로 젊어진다. 이는 저주를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믿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장치로 활용한 설정으로 해석된다.
하울 목소리를 맡은 기무라 타쿠야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평가가 갈린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를 캐스팅한 마케팅 효과는 확실했지만, 성우 연기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지금도 호불호가 나뉜다. 일부 매체에서는 지브리 더빙 캐스팅 중 아쉬운 사례로 꼽기도 하지만, 하울 특유의 나른하고 불안정한 캐릭터와 잘 어울렸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아카데미상을 받았나요?
수상은 하지 못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해 수상은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에게 돌아갔다. 다만 베니스영화제 기술공헌상(황금 오셀라상),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등을 포함해 총 19개의 국제 영화상을 받았다.